咬 작가님 Pixiv원본: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0410925


스팁+버키 논커플링입니다. 커플링 표기는 원본을 따랐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굉장히 평범한 것이었다. 샘의 친구의 여자친구가 추위를 많이 타서 난방 온도를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해 옥신각신했다는 그런 잡담.

“결국 타협점을 찾아서 친구는 맨몸으로 자고, 여자친구는 양말 신고 잔다더라.”

샘의 말을 듣고 나타샤는 그다지 관심 없다는 듯 흐음,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뜻밖에 랩탑을 보던 스티브가 ‘양말? 그거 괜찮네.’ 하고 중얼거렸다. 슈퍼 솔져이고 신진대사가 빠른 그는 체온도 높은 편이다. 과연 잘 때 양말이 필요할지 의아해진 것은 샘뿐만이 아니었는지, 나타샤가 먼저 따뜻한 커피를 입으로 옮기면서 말했다.

“추위 탈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아, 내가 아니라 버키가.”

스티브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자각이 없었는지, 질문을 받고 약간 의외인 듯한 얼굴을 했다.

“반즈가?”

하지만 나타샤에게 한 번 추궁 당하기 시작한 이상 얼버무리거나 대충 넘겨버릴 수는 없으므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 때문인지 버키는 체온이 낮아. 난방을 올려도 계속 춥다고만 하고. 밤에 같이 자면 내 다리에 자기 다리를 붙이는데, 나는 괜찮지만 버키 다리가 너무 차서 속상해. 일어나서 눈치채면 미안해하고. 난 정말 괜찮은데.”

“…….”

“…….”

지금 뭔가 엄청난 고백을 한 것 같은데.

나타샤를 보자 그녀는 컵을 입에 댄 채로 말이 안 나온다는 듯한 얼굴로 이쪽을 돌아본다. 분위기상 발언권은 이쪽에게 주어진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떠넘겨졌다. 그녀는 흥미롭다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깊이 파고들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선수를 쳐서 한 발 물러선 걸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스티브는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커밍아웃이라고 부르기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고, 그렇다고 무심코 실언을 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티브는 이런 농담을 할 사람이 아니다.

아니, 진짜로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되냐고?

타인의 성 지향성이 어떻든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갑자기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알 정도로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다. 화제를 돌리는 게 좋을까? 하지만 어쩌면 스티브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도 사실 용기를 내서 이렇게 고백한 걸지도 모른다. 분명히 들었는데도 그걸 없던 걸로 만들어 버리면 오히려 어색하지 않을까? 평소 전투 때에는 잘만 돌아가는 머리가 오늘은 제대로 돌지 않는다. 왜냐면 그 스티브가! 나타샤가 아무리 여자를 소개해주려해도 ‘바빠서’라며 단호하게 거절하던 스티브가, 당연하다는 듯이 버키 반즈와 같이 잠을 잔다고 하니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스티브는 확실히 반즈와 관련이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필사적이었다. 물론 두 사람에겐 특수한 내력이 있다. 둘이서만 알고 있는 것도 많을 것이다. 충분히 연애 감정이 생길 만 하다. 어쩌면 옛날부터 그랬을지도? 이런 식으로 계속 납득하게 될 정도로 그를 향한 스티브의 마음은 진지하고 올곧고 강하다. 안타깝게도 샘은 인간 관찰에 있어서는 눈썰미가 좋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내가 해야 할 말은 뭘까?

말해줘서 고마워? 그건 좀 무거운 것 같다. 응원할게? 무난하긴 하지만 대체 뭘 응원하겠다는 거지? 차라리 아, 그렇구나, 하면서 가볍게 받아치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만약 스티브에게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다면 스스로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샘이 이것저것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샘?”

눈과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샘에게 스티브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아…… 저기…… 그러니까.”

“응.”

아, 그렇구나—두 마디면 된다. 힘내라 샘 윌슨, 실수 없이 적당히 맞장구치는 건 자신 있잖아!

“그, 같이 잔다는 게, 방 하나에 침대 두 개를 놓고 잔다는 말이지?”

자신 있는 줄 알았는데! 아아악, 이 멍청이! 그런 걸 굳이 왜 물어보는 거야? 이 시점에선 대충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가볍게 받아치겠다고 방금 결심했는데. 나타샤가 살짝 눈썹을 들어 올리며 재미있다는 듯이 이쪽을 본다. 스티브뿐만 아니라 샘의 반응도 감상 중이었던 것 같다.

“아니, 아니야. 내 방 침대에서 같이 자. 매일은 아니지만.”

“당연히 매일은 아니겠지.”

무심코 또 추궁해버렸다. 슈퍼솔져의 정력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성에 막 눈을 뜬 십대나 신혼부부들도 아마 매일 하지는 않는다. 응, 하고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인 스티브는 또 쓸데없는 말을 던졌다.

“일주일에 5, 6일 정도?”

“거의 매일이잖아!”

추궁하고 싶지 않지만 멈출 수가 없다. 아니, 정말 거의 매일이잖아?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꽤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잠입 임무도 하니까 즉 집에서 잘 때는 매일 같이……. 문득 반즈의 얼굴을 떠올려 버렸다. 동료의 잠자리 사정 따위 이토록 생생하게 알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게 다른 누구도 아닌 스티브라니. 성가시다기보다는 스스로도 기분 나쁘지만 상심하고 감상적이게 되는 불가사의한 충격을 느꼈다. 물론 샘이 스티브에게 마음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낙담한 것도 아니고, 단지 오랜 세월 동경했던 사람의 알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봐 버린 것 같은 허탈함. 아, 역시 이런 건 알고 싶지 않았어.

“샘?”

스티브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을 때, 샘은 남은 정신력을 모아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코멘트를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아, 그렇구나—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 조금 놀랐을 뿐이야. 그래도 나는 응원할게. 말해줘서 고마워.”

“뭘 응원해? 양말 신는 거?”

어렵게 꺼낸 말인데도 스티브는 또 동문서답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나타샤는 아직도 컵을 입가에 대고 있다. 그거 벌써 다 마신 거 알거든?

“아니, 그러니까, 그…… 반즈와 연인이 되었다는 말이잖아? 여러모로 힘든 일도 많겠지만 난 네 편이야.”

“연인? 무슨 소리야 샘?”

그런데 이 시점에서 스티브는 또 한 번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응?”

“나랑 버키는 친구야. 연인이 아니라.”

“응?”

이 사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하지만 스티브는 극히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샘은 알고있다. 스티브는 이런 농담을 할 남자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머리를 감싸며 이야기를 정리하던 샘은 일단 의미 없는 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그리고 스티브는 진지하게 답한다.

“잠깐, 한 침대에서 같이 잔다며?”

왜 이런 걸 자꾸 확인해야 해?

“그래, 둘이 같이 쓰려고 큰 이불도 샀어.”

스티브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젠장, 또 쓸데없는 정보를 알아 버렸다. 둘이 같이 쓰는 이불.

“연인도 아닌데 그런 걸 왜 해?”

샘이 아는 한 커플끼리나 반려동물과 함께가 아니라면 한 침대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 뭐 가끔 친구들끼리 취하거나 장난을 치다가 같이 자는 일은 있지만, 일주일에 5일씩이나 그러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어린아이나 아기조차 자신의 침대를 따로 가지고 혼자 잠을 잔다. 스티브의 집에는 게스트룸이 있고 반즈의 방과 침대도 있다고 알고 있다.

“아…… 그건 버키가 밤에 잠을 못 자길래.”

서로 다른 이야가를 하고 있었다고 겨우 깨달은 듯한 스티브가 눈을 깜박이며 씩 웃었다. 웃는 얼굴은 귀엽지만 그런 설명으로는 두 사람의 오해를 전혀 해결해주지 못한다.

“뭐?”

“혼자서보다 나랑 같이 있을 때 더 잘 자는 것 같아. 그래서 밤에는 가능한 한 같이 손을 잡고 자려고 해. 가끔 버키가 불안해하고, 한밤중에 나를 다치게 하진 않을까 걱정해서 혼자 자려고 할 때도 있는데, 서로 잘 이야기해서 같이 잘 수 있으면 최대한 그렇게 해. 나도 버키랑 같이 자면 잠이 더 잘 오니까.”

“……아, 그래.”

뭐, 앞뒤는 맞는 말이다. 앞뒤는 맞지만. 나타샤는 여전히 한 손에 컵을 들고 있다. 끼어들 생각이 는 것 같다.

“그런데도 가끔 가위에 눌리긴 하는데, 그럴 때는 등을 쓰다듬어 주면 금방 진정해서 아침까지 쭉 잘 자거든.”

“어…….”

마침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샘을 불쌍히 여겼는지 나타샤가 컵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즉 뜨거운 우정이란 말이네. 솔직히 너무 뜨거워서 무서울 정도지만.”

그리고 밑도 끝도 없고 별로 도움도 안 되는 한 마디에 샘은 동요했지만 스티브는 딱히 놀라거나 움츠러드는 모습 없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야 버키는 항상 곁에 있어 줬으니까. 내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꼬맹이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누구보다 나를 좋아해 주면서 손을 내밀어 줬고, 외롭지 않게 해 줬어.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해주는 기쁨이나, 남에게 도움을 부탁할 용기나, 소중한 것을 잃는 슬픔과 후회, 추악한 분노와 증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과 살아가는 기쁨까지 모두 주었지. 더 이상 손을 놓기 싫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야.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 주고 싶어. 지금까지 많은 걸 받았으니까. 난 지금 정말로 행복해.”

역시 나타샤도 말을 잃었다. 그 어느 때보다 로맨틱하고 말이 많아진 스티브는 말 그대로 정말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어서 샘도 더 이상 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샘? 냇?”

“으음…….”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상당히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추궁할 수 없다. 샘은 으음, 하며 신음만 내고 있다.

“일단 그거, 반즈 본인한테는 말하지 마…….”

둘이 어떤 사이인지는 알지만 아무래도 당황스럽겠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든가, 손을 놓기 싫다든가. 서로 얼굴을 마주본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간 나라면 진짜로 당황할 테고, 나타샤 말대로 너무 뜨겁고 무서울 것이다. 하지만 스티브는 역시 태연하게 대답한다.

“왜? 버키한테 항상 해주는 말인데?”

“뭐????”

설마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당혹감에 떨고 있는 샘을 스티브는 여전히 어리둥절하게 본다. 우린 대체 왜 이런 대화를 하고 있지? 하지만 여기서 대화를 끊지 못하는 건 샘이 그만큼 단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 하면 안 되는 거야?”

“안 된다기보다는…… 그보다, 저, 반즈는 뭐라고 해? 당황스러워하지 않아?”

우물쭈물하는 샘을 보며 스티브는 가볍게 눈썹을 들었다.

“버키가? 당황해? 왜?”

“아니, 당황하지 않는다면 다행이지만…….”

“버키는 언제나 웃어줘. 버키의 웃는 얼굴은 정말 예뻐서 항상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

샘은 터져나오려는 탄식을 가까스로 참아낸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었다. 나타샤가 말없이 빈 잔을 들고 미팅룸에 있는 주방 카운터로 갔다. 샘은 당황해서 자신도 거기에 볼일이 있는 척 하고 그녀를 따라갔다.

“왠지 나는…….”

먼저 말을 꺼낼 순서를 양보한다기보다 서로 미루려는 눈치 싸움에서 패배한 샘이 살짝 입을 벌리자 컵을 씻던 나타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알아.”

평소의 나타샤라면 쉽게 하지 않는 다정한 말투였다. 그리고 두 사람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부담스러워.”

나타샤는 작은 한숨을 쉬고 스티브에게는 들리지 않게 속삭인다.

“차라리 매일 밤 엄청나게 섹스한다는 말을 듣는 게 나을 것 같아.”

“아니, 난 그것도 싫어. 지금 머리가 너무 복잡해.”

“뭐 어때? 우리하곤 상관 없는 일이잖아. 아 그렇구나, 하고 넘기면 되니까.”

“그렇긴 한데…….”

“저렇게 자세하게 듣는 것 보단 낫지.”

확실히 그러는 편이 훨씬 간단하다. 그러나 오늘 스티브의 이야기를 해석해보면 단순한 내용이 아니다. 분명 스티브의 마음은 연애 감정이 아닌 우정일 것이다. 물론 우정과 연애 감정에 경중을 가릴 생각은 없다. 그것은 아예 벡터가 다른, 서로 비교할만한 감정이 아니다. 단지, 조금 진하고 지나치게 무거울 뿐. 샘과 처음 만났을 때의 스티브는 공허해 보였기 때문에 소중한 것을 찾아낸 건 잘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깊숙이 얽힌 인연이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스티브는 반즈를 지키기 위해 많은 제약과 지시를 받고 있다. 원치 않는 형태의 지령에도 따라야 했다. 그와 동시에 반즈도 스티브에게 보호받음으로써 여러 가지 제약이나 의무를 부여받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감금이나 구속될 가능성이 높았을 테니 파격적인 대우지만 본인이 원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함께 있을 수 있다.

겨우 그것 뿐인데도 저렇게 기쁘게 웃고 있다.

체온이 낮고 다리가 차가워서 속상하다고? 잠을 잘 못 자니까 같은 침대에서 손을 잡고 같이 자고, 가위에 눌리면 등을 어루만져 준다고? 아침까지 쭉 잘 잔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오히려 스티브가 제대로 자지 않고 반즈를 지켜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아마 반즈는 그런 스티브를 그대로 받아 들이고 있다. 아니면 밤마다 같이 손을 잡고 자지는 않을 것이다. 친구를 향한 마음이라기엔 너무 깊고 강한 집착과 사랑이 마치 한 생명의 몸을 둘러싼 혈류처럼 둘 사이에 흐르고 있다. 스티브에서 흘러나와 반즈의 안에서 돌고 다시 스티브에게 돌아간다. 두 사람은 그걸로 살아가고 있다. 제3자로서 함부로 이해하려 할 순 없다. 샘은 역시 깊게 추궁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다만 지켜볼 생각이다. ‘응원할게’라거나, ‘나는 네 편이야’라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나타샤도 어차피 같은 마음이면서 시침을 뗄 뿐이다.

“냇, 샘, 무슨 이야기 해?”

두 사람이 카운터 안에서 속닥대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신기했는지, 스티브가 밝은 얼굴로 말을 걸었다. 샘과 나타샤는 동시에 스티브를 돌아본 뒤 역시 같은 타이밍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본다.

“본인이 어떤 폭탄 발언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얼굴이네.”

“뭐, 그런 걸 모른다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눈치를 못 채는 게 오히려 문제 아니야? 저거 그냥 내버려 두면 아무 생각 없이 퍼뜨리고 다닐 거야.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

설득력 있는 말이다. 굉장히 설득력 있다. 상상만 해도 뒷목이 당긴다. 다른 사람도 그렇지만, 특히 토니 주변인의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토니는 토니 나름대로 스티브와 돈독한 우정을 다졌기 때문에 또 다른 난장판을 보고 싶진 않다. 게다가 스티브는 절대 그 폭탄 발언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런 점에선 매우 털털하고 무신경하며 자신의 복잡한 감정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다만 반즈와 관련된 일은 예외지만.

“그런가……”

“네가 제대로 못을 박아 놔.”

“그걸 왜 내가 해?”

“여러 번 말 하게 하지 말고.”

“너야말로 오늘 아무것도 안 했잖아?”

“냇? 샘?”

나타샤는 이번에도 대답할 마음이 없어 보여서 어쩔 수 없이 샘이 다시 스티브 쪽을 돌아본다.

“아무것도 아니야. 커피 더 탈까 하는데 마실래?”

누가 들어도 얼버무리려는 대답이었만 스티브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마워.”

아까처럼 활짝 피어나는 듯한 웃음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신뢰와 우정을 느끼는 웃음이었다. 아마 스티브는 그 차이를 알면서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오늘밤도 친구의 손을 잡고 잘 것이다. 망설일 것도, 의심할 것도 무엇 하나 없다. 샘은 나타샤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러 마지못해 마지막으로 한마디 거들게 했다.

“저기, 스티브. 아까 한 말 다른 사람한테는 하지 마. 특히 토니한테.”

“어? 왜?”

“그냥 우리끼리만 알고 있자고. 아무한테도 말 하면 안돼. 비밀이야.”

“어…… 그래, 알았어.”

스티브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끄덕인다. 그것을 보고 샘과 나타샤는 다시 눈을 마주보고 입모양만으로 말했다.

'하여간 손이 많이 간다니까.'




슬슬 잘 시간이 되자 먼저 침대에 들어가던 스티브는 옷을 갈아입고 있는 버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양말을 신어보라고 하니 버키는 잠이 잘 안 올 것 같아서 싫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은 꼭 다리가 닿지 않게 무릎을 굽히고 자겠다고 했지만, 스티브는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미팅룸에서 있었던 일을 이어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샘이랑 냇이 앞으로 다른 사람한테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래.”

버키가 벗은 셔츠를 의자 등받이에 걸친 뒤 방의 전등을 껐다. 스탠드의 부드러운 오렌지색 빛이 침실을 비추고 구석은 어둠에 물든다. 버키는 침대 옆에서 신발을 벗으면서 그래? 하고 신기하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왜 하지 말래?”

“글쎄, 잘 모르겠어. 자, 벅.”

마지막의 자, 라는 말은 이불 속에 들어온 버키에게 손을 내밀며 건넨 말이다. 스티브가 오른쪽에, 버키가 왼쪽에 누워서 기계가 아닌 쪽의 손을 잡는다.

“응.”

버키는 고분고분하게 스티브의 손을 잡고 베개를 머리를 베고, 이를 지켜본 스티브는 머리맡의 스탠드를 껐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있다가 문득 떠올렸다.

“그런데 있잖아.”

“……음?”

거의 잠들어 있던 버키가 졸음에 겨운 대답을 했다.

“벅, 내가 그렇고 그런 말 하면 당황스러워?”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리다 보니 샘이 했던 말들이 조금씩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버키가 항상 웃으며 들어주니까 혼자서 너무 앞서갔던 건지도 모른다. 만약 성가셨던 거라면 앞으로 하지 않을 생각이다.

“당황스럽다고? 그렇고 그런 말은 또 뭐야?”

“그러니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든가, 더이상 멀어지기 싫다든가 하는 거. 오늘 샘한테 그런 이야기도 들어서.”

옛날에는 그런 말을 의식적으로 한 적이 없다. 함께 있는 게 당연했고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대놓고 그런 말을 하기 창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실과 긴 이별이 스티브를 굴복시키면서 고독하고 강한 후회를 안겨줬다. 손을 잡지 못했고, 화물칸에서 함께 떨어지지 못했다. 버키를 찾으러 가지 않았다. 아, 그리고 어째서 함께 있을 동안 네가 소중하다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모든 후회들이 하나 하나 얽혀 지금의 스티브를 솔직하게 만든다. 게다가 버키가 오랫동안 힘든 일을 겪고 자신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동거를 시작했을 당시, 아니 그 전부터 버키는 스티브가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것에 강한 공포를 느꼈다. 내가 스티브의 발목을 잡고 있어. 어쩌면 다치게 할지도 몰라. 날 위해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을까? 옛 친구따위 빨리 버리고 가버려. 그런 말 뿐이었다. 그래서 버키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친구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지금도 매일 들려주고 싶다. 내가 너를 도와준다기보단, 나에게 네가 필요할 뿐이야.

“정말 당황스러워?”

스티브치고는 조심스러운 질문에 버키는 가볍게 숨을 토했다. 웃은 걸까? 그렇다면 좋을텐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당황한 적 없어. 나 역시 네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같이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생각해. 네가 있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폭풍 속에서도 나는 외롭지 않았어. 오직 너뿐이야.”

“정말?”

“멍청아, 지금 나 의심해?”

“야!”

이번에는 큰 소리로 깔깔대며 버키는 잡고 있던 손을 풀어 스티브의 머리를 쓰다듬고, 다시 손을 잡는다.

그거 봐, 내 착각이 아니잖아. 스티브는 그의 손을 꼭 쥐고 눈을 감았다.

“잘 자, 버키.”

“잘 자, 스티브.”



잘 자, 나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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